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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기타경제일기

by 소포트 2020. 2. 1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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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거시적, 미시적으로 경제전반을 가장 깊게 들여다보고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팟캐스트나 유투브 등 매체에서 들으면 목소리도 좋은 분이다.

 

최근 책을 냈다고 해서 이북을 구매해서 들여다보았다.

 

 

정말 쉽게 풀어내 기초 경제지식만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인류사의 큼직한 사건들 50여개를 뽑아 그 사건들과 돈, 경제의 관련성,

 

화폐&시장경제의 발전과정에 대해 통찰력있게 담아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사실상 200년이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준비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명히 불완전한 시스템이지만, 그만큼 인류를 번영의 길로 이끈 체제임은 분명하다고 느꼈다.

 

1부 - 나폴레옹 전쟁 중심으로 산업혁명, 금융시스템의 등장과 서양의 발전과정 서술

19세기 초 GDP나 인구, 경제, 모든면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비해 우위에 있었으나 결국 영국이 세계를 제패했다.

영국이 강력한 함대, 해군을 건설할 수 있었던 힘은 '명예혁명' 에서 비롯한다. 예나 지금이나 해군은 돈이 많이 든다.

(p.s.니미츠 제독은 함선은 여자와 같다 했다. 분칠하고 가꾸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화약, 페인트를 빗댄 말이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의 국채금리가 하락하여 타 유럽국가에 비해 빠른속도로, 금융시스템이 급격하게 발달할 수 있었고

경제력이 프랑스에 비해 열위에 있었음에도 자본조달이 상당히 용이했다. 다른 국가들은 왕실이 빈번하게 채무 불이행을 했지만, 영국은 과거 수차례 혁명으로 채권이자를 연체할 경우 혁명이 일어날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이자를 성실하게 갚았고 자본이 넘쳐났다.(M1 + M2 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영국이 자체 GDP와 총생산량은 프랑스보다 열위의 경제에 있었지만 금융시스템의 발달로 훨씬 많은 자본을 운용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자본이 넘쳐난다는 것은 전문인력, 군사력, 기술력이 그곳으로 모인다는 것을 뜻한다. 장기적으로 영국이 프랑스를 서서히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식회사(유한책임으로 사업동기유발), 펀드(risk의 감소), 건전한 은행(영란은행의 막대한 자산) 등 신뢰할 수 있는 자본시장이 형성되자 전 세계 부자들의 자금은 런던으로 몰려들었고 프랑스를 누르는 원동력이 되었다.

 

2부 - 중국 중심의 동양역사, 신대륙의 발견이 중국과 유럽 통화공급에 미친 영향과 왜구의 창궐

대항해시대로 글로벌경제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들어온 막대한 은화는 은본위제의 도입으로 화폐경제를 발전시켰다. 자연스럽게 시장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기초가 쌓이게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중국, 일본 등 지역으로 무역을 시도했고 동아시아도 번영하게 되었는데, 중국은 당시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었고, 자유무역이 아닌 조공무역을 했던 터라 정권 교체기에 서양 상인을 일절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고, 무역으로 먹고살던 중국, 일본인들이 왜구로 돌변하였던 것이 역사작 기록이다. (해금정책 ->생업을 잃은 중국, 일본인 왜구증가) 이후 마카오를 포르투갈에 조차해주었더니 왜구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유럽과 활발하게 무역하던 중국에는 상당한 양의 은이 흘러들어왔다. 중국인들은 수출만 했지, 미개한 서양에서 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국제수지 불균형 발생.

이후 금,은 교환비율이 서양과 중국에서 달라졌고(오늘날의 환율),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영국이 벌인 일이 바로 아편전쟁이었다. 이후 중국은 서양에 종이호랑이의 모습을 들킨 뒤 어두운 근대사를 경험하게 된다.

 

3부 - 산업혁명의 발생과 확산(근면혁명vs기계혁명, 인구압의 역설)

  지금와서 돌아보면, 청나라는 인구 4억 이상에, 당시 대영제국에 버금가는 국력을 가진 나라였다.(사실 오늘날도 미국 다음이 중국이니..) 또한 에도막부 시대에도 도쿄 인구는 5천만이 넘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에도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강대국에 속했다. 생각해보면 인구가 많으면, 비율적으로 천재도 많고 창의적인 사람도 많아야 하는데 산업혁명은 왜 청나라가 아닌 영국에서 발생했을까?

  바로 인구의 과잉 때문이다. 인구가 많아지면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하기 쉬워진다. 노동의 가치는 떨어지고 농업에는 좋을지 몰라도, 기술의 발전, 공업화를 추진하기에 불리한 조건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똑같다. 개발도상국이 기술투자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건비가 워낙 싸기 때문에, 그냥 사람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교통체증이 심각한 자카르타에 돈받고 유턴시켜주는 직업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 수확체감의 법칙 : 농업에 적정 수 이상의 사람을 투입하는 사회는 생산성이 줄어들고 1인당 소득이 감소한다.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산업혁명이 아닌 근면혁명이 일어났던 것. 사람의 값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의 외형을 키우는 전략이다.(북한의 천리마운동,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과도 비슷하다.) 이는 경제발전 초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먹거리를 가져가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럽국가들은 왜 인구압이 낮았을까? 다른 국가에 비해 도시화가 빨리 진행되고, 인건비가 높다보니 기계의 발명이 절실해졌다. 또한 금융시스템의 발달로 일찍부터 저금리 상황을 겪고있어 자본은 항상 투자처를 찾기에 절실했다.

  인구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작물이다. 밀과 쌀은 각각 단위면적당 생산량과 인구부양력이 다르다. 아시아 국가들이 인구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쌀은 기후에 따라 2,3모작도 가능하다) 인구가 적다 보니 인건비가 높았고, 높은 인건비를 피하려고 기계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동아시아는 인구의 증가 -> 임금하락 -> 기술개발유인감소 ->화폐경제감소의 과정을 거쳐 유럽국가들에 비해 발전이 늦었고, 서구열강의 침략을 경험하게 된다.

 

4부 - 대공황과 금본위제

  지금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주도하는 평화)라면, 1차대전 당시는 팍스 브리타니카였다.(영국주도의 평화) 당시 영국은 현재의 미국처럼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도 않았지만, 자본시장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영국은 발전된 금융시스템으로 다른 나라들의 돈까지 끌어모아 규모의 경제를 누리게 되었지만, 타 국가들은 금융이 발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영국은 당시 파운드화와 금의 비율을 잘 관리하여 안정적인 금본위제를 유지했고 기축통화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1차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은 1억6500만달러의 금만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세계 금융중심지의 역할을 잘 수행했던 것이 그 예다.

  유럽은 교역으로 잘 얽혀있었고 파운드화의 금융패권이 넌무 강해 전쟁이 발생하는 순간 적대국의 수도에 있는 자국 자산들이 동결될 가능성이 높아 1차 세계대전은 정말 예측하지 못한 전쟁이었다. 물론 독일은 개전 초엔 비축된 자원으로 전쟁을 치뤘지만, 장기적으로 튼튼한 금융시스템과 자원을 가진 영국을 이기기엔 불가능했다. 연합국 측은 전쟁자금을 금융시장에서 빌려올 수 있었지만, 동맹국 측은 전쟁자금 조달을 자체 중앙은행에서 해야했고, 금본위제를 채택한 당시 금융시스템 하에서는 중앙은행이 금보유량을 초과하는 화폐발행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후 독일은 금본위제가 폐지된것이나 다름없었다.(발행한 돈 만큼 금이 없기 때문에 화폐에 적힌 금액만큼 금으로 돌려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하게 된다.

 

5부 - 금본위제 폐지와 인플레이션, 오일쇼크

  1차대전 당시 독일은 특정 전투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 적이 없었다. 식량난 속에 내부에서 발생한 혁명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전쟁 이후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갚기 위해 독일정부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통화발행이었다. 금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계속 화폐를 발행했고, 1920년대부터 매월 물가가 50% 이상 폭등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결론적으로 독일은 1조배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경험했다. 결국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실물자산을 가진 기업이나 정부의 배를 불렸고 대다수의 국민을 거지로 만들었다. 이후 히틀러를 비롯한 전체주의 세력이 득세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리드타임 : 주문에서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

주택이나 상품처럼 리드타임이 긴 산업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신속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1973년부터의 오일쇼크는 리드타임이 긴 오일산업의 특성을 어느정도 반영한다.

 

6부 - 플라자합의와 당시 미,일 경제동향

  닉슨쇼크 이후 세계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며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기축통화이고 가장 강한 화폐인 달러강세가 오래 지속되고, 미국은 수출이 잘 되지 않고 수입만 늘어나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었다. 이후 레이건행정부는 환율 조정을 위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프,독,일,영 재무장관들과 함께 엔화절상, 마르크화의 절상을 요구했다. 이들 화폐가치 절상을 위해 강력한 시장개입에 나서고, 목표치에 미달할 경우 정책금리 개입을 통해서라도 달러가치를 떨어뜨릴것을 요구했다. 엔화가 절상되면서 일본 버블시장 붕괴를 촉발시켰다. 

 

7부 - 한국 경제 이벤트 (토지개혁, 제조업, 외환위기, 서브프라임)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어야 뒤이어 불황에 빠지지 않는다. 미국이 2008년 이후 밴 버냉키 의장을 필두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면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엄청난 양의 양적완화를 한것이 그 실천사례다.

  지난 50년간 한국은 연간 100달러 미만의 소득에서 3만달러가 넘는 눈부신 성장을 했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100배 이상의 질적 성장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치하에서 해방되면서, 토지개혁을 해서 번영의 초석을 놓았다 할 수 있다. 일제시대 대지주들이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이나 노동자로 전락하였는데, 일제의 패망으로 원료공급이 끊겨 공업이 쇠퇴하면서, 다시 농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국민의 관심사는 토지분배에 집중되었고, 미군정은 최대한 불만 없는 방향으로 토지를 분배해야 공산화의 위험에서 38선 이남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48년 초, 농업인구의 24%에 해당하는 농민이 새롭게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국유지, 기존 일본인 토지를 농민에게 매각)

 

조금 내용이 더 있지만, 알맹이만 요약하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정말 흥미롭게 읽혔다.

홍춘욱 박사님의 통찰력에 놀라울 따름. 어느정도 경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저 주식 차트분석하고, 부동산 카톡방에서 떠드는 투기꾼이 되지말고,

자칭 전문가들이 찝어주는 물건에 혹하는 패배자가 되지 말자.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크게 실패하게 되어있다.

경제의 기초지식을 갖고 투자에 있어서 항상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건전한 투자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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